남양 유업 사태 이후에 요즘 "을의 반란"이라는 이야기가 회자됩니다. 갑의 횡포에 휘둘리는 을의 이야기가 가슴아프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권력을 휘두르는 갑도 권력에 휘들리는 을도 모두가 메트릭스에 갇혀 하루 하루를 견뎌대는 듯합니다.
얼마전 제너 시스템즈라는 소프트스위치 전문업체가 상장 폐지 위기까지 몰렸다는 기사를 보면서 국내 IT 생태계를 망가트리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언제나 제 개인적인 사견임을 밝히며, 넥스퍼트의 편집의도와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제너 시스템즈를 아시나요?
제너 시스템즈는 IT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국내 토종 벤처기업으로써 소프트스위치를 주력 제품으로 판매하였습니다. 제너 시스템즈는 2006년 벤처기업 대상 대통령상, 2007년 소프트스위치가 대한민국의 세계일류 상품 선정, 2009년 디지털이노베이션대상 국무총리상상을 수상한 기업입니다. 특히, 2010년 기업 설립 10년만에 매출 400억 달성과 함께 2012년 대부분의 국내 통신 사업자에 제품을 납품하면서 국내 가정용 및 중고기업용 인터넷 전화 시장을 장악하였습니다.
제너 시스템즈의 소프트스위치는 지난 10년간 인터넷 전화 시장의 급속한 성장과 함께 기술력과 제품 안정성을 인정받았습니다. 국내 인터넷 전화 시장은 2012년 11월 기준 천백만명 이상이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거대 시장입니다. 이 시장은 브로드소프트의 브로드웍스 시스템과 제너의 소프트스위치가 양분하고 있지만 중저가 시장은 제너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위의 표는 인터넷 전화 사업자의 가입자 수를 나타낸 표로 제너 시스템즈의 주요 고객입니다. 제너의 소프트 스위치는 인터넷 전화 사업자 뿐만 아니라 많은 공공기관도 운용합니다. 제너시스템즈는 한국을 넘어 인도네시아 및 싱가폴 등의 해외 통신사에 납품하면서 해외 진출 가능성도 높았던 기업이었습니다.
위기의 제너 시스템즈
이렇게 잘나가던 제너시스템즈는 2012년 2월 "제너시스템즈, 영업실적 악화일로.. 관리지정?" 이라는 기사가 ( http://news.mt.co.kr/mtview.php?no=2013021809089611283 ) 뜨면서 더이상 안정적인 회사가 아닌 위험한 상황에 놓인 기업이 되었습니다.
2011년 400억 매출 목표를 바라보던 제너시스템즈가 2012년 말 56억 정도의 매출을 기록하였다는 것은 다소 의아하였습니다. 단순히 기존 도입 사업자에 대한 연간 유지보수에 대한 것만을 따져보아도 56억은 말도 않되는 매출입니다. 그래서 공시되어있는 매출액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제너시스템즈는 3월 법인이므로 2012년 3월 부터 12월까지의 매출액은 정말 57억원정도 였으며, 남은 3개월의 매출을 예상하더라도 회사의 매출이 1/4 토막 이하로 줄어든 회사로 추락하였습니다.
제너 시스템즈는 예전부터 기업의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일반적인 우려가 있었습니다. 소프트스위치 한분야에만 집중하여 제품 포트폴리오가 적다는 것과 대부분의 인터넷 전화 사업자가 도입을 하면서 신규 시장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벤처 기업은 한 분야 치중하여 어느 정도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한 후에 다른 비슷한 포트폴리오를 갖추는 것이므로 시장을 완전히 장악한 제너시스템즈는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입니다.
또한, 제너시스템즈는 소프트스위치의 성공 뒤에 안주하고 있던 회사가 아니라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기 위해서 모바일 인터넷 전화 (mVoIP)와 보이스 피싱 방지 솔루션등의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시장 진출에 실패하기는 하였지만 지속적인 변화를 시도하였습니다.
제너 시스템즈는 현재 소프트스위치에 대한 유지보수를 위한 인력과 장비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제너두라는 기업 블로그는 작년 12월을 기점으로 새로운 글이 더이상 올라오지 않으면서 기업의 활력을 잃었습니다.
한 때 성공적인 벤처 기업 가운데 하나였던 제너시스템즈가 왜 지금의 상황에 직면했는 지는 여러가지 정황과 업계의 상황에 비추어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나마 객관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이런 상황에 대한 몇 개의 기사를 살펴보면서 제너시스템즈와 같은 국내 벤처기업들의 현실을 유추해 보겠습니다.
"대형 통신사업자와 사업하면 망한다"는 IT의 속설
KT는 인정하기 싫겠지만 KT랑 사업을 같이하는 많은 중소기업들이 실제로 문을 닫았습니다. 이러한 속설을 뒤집기 위해 2009년 6월 KT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이석채 회장은 "주요 협력사로부터 KT와 사업하면 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상생방안을 만든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 상생경영은 비용추가 요인이 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세상에는 공짜 점심이 없다'면서 '원가절감으로 협력사를 다그치면 당장의 비용절감이 되더라도 언젠가는 또 다른 비용문제도 다가올 것이므로, 지금의 상생경영 활동이 장기적으로 주주가치를 올리는 일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기사를 예로 든 것은 KT로 대표되는 대형 통신사업자와 협력했던 많은 벤처기업들이 도산했음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과 KT와 같은 대형 통신 사업자가 상생 경영을 노력하고 있었다는 것을 상기하기 위함입니다. KT의 상생방안은 성공사례 가운데 하나로 기사화 되곤 하였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또 하나의 회사가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제너시스템즈의 실패 원인이 KT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그리고 현재에도 진행중일지도 모르는 대형 통신사에 납품하게되면 엄청난 성공이겠지만 왜 이런 속설이 나왔던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왜 국내 많은 IT 벤처 기업들이 망해가는 지를 사례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국산 소프트웨어는 가격이 없다
새로운 제품을 연구 개발하는 제조사들은 적정한 시장 가격을 기준으로 제품 가격을 책정합니다. 원가에는 무형과 유형의 다양한 원가들이 포함되고, 경쟁사들의 제품 가격도 반영됩니다. 국산 소프트웨어 제조사는 대형 프로젝트의 경우 수주에 목적을 두다 보니 기본 마진 이하로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 국산 소프트웨어는 가격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개발이 완료되면 더이상 비용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이상한 논리에 기인합니다.
예를 들면, FMC (Fixed Mobile Convergence) 바람이 국내에 불면서 몇몇 기업들이 삼성 블랙잭 휴대폰을 이용하여 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FMC는 휴대폰에서 인터넷 망을 이용하여 음성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전화망을 이용하지 않아 직원과 직원간에 무료로 통화하는 것이 장점인 서비스입니다. 초창기 해외 제품들은 카피당 100 달러가 넘는 가격에 판매 되거나 작은 외국 기업의 제품도 30~40 달러 이상의 라이센스를 받고 판매하였지만, 국산 제품들은 단돈 천원에 판매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즉, 국산 소프트웨어에 가격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한 셈입니다.
천원 (1 달러)에 판매되던 제품에 유지보수 가격을 제대로 받을리 만무하며, 그후 출시된 스마트폰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과거 단돈 1 달러에 판매되던 이름도 없는 제품들은 지금 시장에서 사라졌으며, 지속적으로 제품 개발을 해오던 외산 벤더들만이 현재 서비스를 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간간히 쏟아져 나오는 국산 벤더들의 제품들은 수많은 스마트폰의 특성을 맞출 수 있는 기술력도 여력도 없기 때문에 시장에서 지배력을 갖추기 힘듭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스마트폰을 만드는 제조사에서 이런 제품을 출시하기도 하지만 시장 지배력은 미미합니다.
소프트웨어이든 하드웨어이든 적정한 가격 또는 합리적인 가격에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 시장의 원리지만, 유독 국산 제품은 IT 시장에서는 홀대받습니다. 제너 시스템즈는 수백만명의 가입자를 가진 소프트스위치를 판매하였음에도 지속적인 성장이 불가능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낮은 가격입니다. 낮은 도입 단가는 다시 제품의 신규 서비스와 업그레이드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도록 합니다.
2. 최저 입찰제를 악용한 구매 담당자들의 횡포
기능과 성능 시험을 통과한 제품들 가운데에서도 각 사업자별로 최적화된 제품이 있기 마련입니다. 기술과 성능이 다소 부족한 제조사는 낮은 가격으로 입찰하여 가격적인 우위를 점유하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끝나면 다행인데 2등 업체에게 1등 업체의 가격을 제시하고 가격을 낮추면 도입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기능과 성능이 더 뛰어나지만 가격면에서 2등인 제품의 연구 개발 및 원가로는 되지 않을 금액을 제시하고 시장확장을 위해 출혈 경쟁을 시작합니다. 이로 인해 구매 담당자는 좋은 실적을 내게 됩니다.
현재의 최저 입찰제가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시장에 지배적입니다. 이 구조에서는 납품을 하는 기업이 1차적인 피해자입니다. 제품의 아이디어와 연구 개발 비용, 제품 원가 및 향후 유지보수 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KT와 같은 대형 통신 사업자에 납품한다는 실적만을 보아서 생긴 직접적인 피해입니다.
그 다음 간접적인 2차 피해자는 제품을 도입한 기업과 대형 통신사입니다.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납품업체는 도산을 하게 되고 처음보다 더 많은 비용을 들여 다시 제품을 구매해야 합니다.
제너 시스템즈를 구매한 많은 사업자들은 현재는 기존 제품으로 서비스가 가능하지만, 새로운 부가 및 신규 서비스가 업계에 쏟아져 나오시 시작하면, 새로운 제품을 도입하거나 값비싼 개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현재 제너 시스템즈는 값비싼 개발 비용을 누군가가 지불하더라도 다시 개발팀을 꾸리고 개발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몇 배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3. 커스터마이징이라는 제품은 없다
외산 벤더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커스터마이징입니다. 외산벤더는 커스터마이징을 최소한으로 제한하거나 필요한 경우 API (Application Programing Interface)를 공개하여 상호 연동하도록 구성하여 제품의 개발 방향과 로드맵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합니다. 그러나 국내 기업들은 프로젝트 수주에 급급하면서 패키징을 통한 방식보다는 고객의 요구사항을 무조건 수용하는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낮은 매출을 커스터마이징을 위한 개발 비용에서 충당하기 때문입니다. 심한 경우에는 같은 회사의 제품을 쓰면서도 같은 제품인지를 모를 정도이고 제품 개선과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고객의 요구 사항을 무조건 수용한 고객 맞춤형 제품들은 처음에는 도입하는 고객도 만족하고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 제조사도 만족합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고객과 제조사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제조사는 기술 로드맵을 바탕으로 제품을 업그레이드할 수 없으므로 좋은 제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낡은 제품으로 전락합니다. 고객은 새로운 부가 기능과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다시 제조사에게 막대한 개발비용과 인력을 투입하여 재개발합니다. 이를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시스템은 지속적으로 느려지고 문제가 여기저기서 발생하지만, 처음부터 다시 프로그래밍 코드를 만질수는 없습니다. 결국, 장기적으로는 제품에 악영향을 주는 사이드 임팩트로 인해 제품의 안정성을 해치게 되어 유지보수 조차 어렵게 만듭니다.
대표적인 예로 메신저를 들 수 있습니다. 2005년을 전후로 국내 기업들은 채팅과 상태정보를 제공하는 메신저를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름있는 그룹사의 IT 계열사들은 직접 개발하거나 작은 벤처 기업에 개발을 의뢰하여 그룹사 전체에 납품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기능을 저렴한 구축 비용으로 구축하였으므로 만족도가 높았으며, 그룹의 계열사의 경우 새로운 수익원으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초창기 메신저는 채팅 위주의 기능을 제공하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음성 및 영상 통화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가기능을 제공하는 UC Client로 진화하였습니다. 직원들의 요구 사항이 많아지면서 기업의 자체 또는 커스터마이징된 메신저는 갈 길을 잃었습니다.
제품의 로드맵을 기업 담당자가 직접 만들고 개발하는 과정에 깊숙이 참여하다 보니 제조사에서 새롭게 개발을 하여도 다른 곳에 적용할 수 없는 솔루션이 됩니다. 또한 추가 개발을 하려고 해도 기존 제조사의 도산으로 더이상 개발이 불가능한 경우도 비일 비재합니다.
낮은 가격과 커스터마이징을 강요하던 고객들은 이제 UC Client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기존 메신저를 폐기하고 제품 로드맵을 바탕으로 꾸준히 개발해온 외산벤더의 제품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Lync 나 시스코의 재버는 기본적인 채팅 기능은 무료로 제공하고 멀티 OS를 지원하므로 메신저 기능만을 제공하는 제조사가 수익을 창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돌이켜보면, 처음에는 사용자당 천원 정도의 개발 또는 커스터마이징 제품이 모두에게 만족을 주는 듯 했지만, 이제는 새로운 음성 및 영상 기능이 첨부된 UC 클라이언트를 도입하기 위해 사용자당 100불 또는 200불 이상의 비용을 지불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제대로된 제품 로드맵을 갖출 수 있는 비용을 주지도 않았고, 커스터마이징과 제품 개발에 까지 고객사들이 영향을 미친 결과 부메랑이 되어 자신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국산 벤더들의 허울좋은 고객맞춤형 제품은 자신의 살을 깍아 먹고, 제품의 수명을 단축시겼습니다. 엄청난(?) 고객은 제품 개발 후 제품의 권리와 판매권은 고객사에 귀속되는 것을 계약에 명시하기도 합니다. 고객사는 제품을 추후 개발할 능력도 없고 유지보수할 능력도 없지만, 자신들의 아이디어로 개발된 제품이므로 자신들에게 권리가 있음을 주장합니다. 이런 제품은 더이상 쓸모가 없어집니다.
이제 제품을 도입하는 기업은 커스터마이징을 요구하는 것을 자제해야 합니다. 외산 벤더의 경우에는 고객맞춤형 기능 개발의 경우에는 고객으로 부터 별도의 개발 비용을 받는 것은 당연하며, 일반적인 상황에서 필요한 기능이라고 판단되면 제품의 로드맵에 포함시킵니다. 제품 로드맵까지 고객이 기다릴 수 없다면 별도의 추가 비용을 내고 제조사에 개발을 의뢰합니다.
4. 무상 유지보수의 함정
국내 기업들은 제품 도입 시에 무상 유지보수 기간을 명시하거나 기간을 스스로 강제하기도 합니다. 제품 도입 후 일반적인 관행은 1년의 무상 유지보수기간이 주어지지만, 검수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계약서에도 없는 기술이나 기능을 추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비일비재합니다. 소프트웨어의 경우에는 매우 심각한 상황으로 제품 도입 후 일정한 안정화 기간과 더해서 1년에서 길게는 3년의 무상 유지보수 기간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안정화기간 중에는 개발자와 설치 엔지니어가 상주하는 것도 당연히 여깁니다.
장비를 도입하는 입장에서는 무상으로 서비스 받을 수 있어 좋겠지만, 결국 납품업체에 전가된 운영 비용으로 인해 순이익이 감소하게 되어 납품업체의 재무 건전성을 악화시킵니다. 기업이 도입하는 것은 좋은 제품을 도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제조사가 망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서비스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고객들이 자사에게만 싸게 납품하고 무상 유지 보수를 길게 해주길 바라기 때문에 결국 제너와 같은 촉망받는 기업도 망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꽁짜 점심은 없다"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5. 서비스 없고, "싸비스"만 있다
외산 벤더의 경우 체계적인 제품 개발로 새로운 기능과 성능 개선을 위한 메이저 릴리즈 버전의 업그레이드 비용과 기존 버전의 문제점이나 장애를 해결하주는 유지 보수 버전을 따로 만들어서 유지보수 계약을 체결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를 통합하여 Service Assurance 계약을, 시스코는 메이저 릴리즈는 UCSS 계약으로 유지보수 버전은 ESW 계약으로 합니다. 오라클 등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판매 기업은 이러한 계약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비용은 제품 표준 단가의 15%에서 많게는 25% 이상으로 기업들이 매년 지불합니다. 이 비용을 바탕으로 외산 벤더는 끊임없는 제품 개발과 제품 안정성을 증가시킵니다.
국내 제조사의 경우에는 소프트웨어는 일반적으로 제품 도입 단가의 1% 에서 5%를 받는다고 합니다. 따라서 제품 업그레이드는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삼성과 LG가 전화 교환기를 만들어서 납품할 때 우스개 소리로 전화 교환기의 소프트웨어 버전이 존재하지 않고 고객사마다 모두 틀리다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제품의 메이저 릴리즈도 유지보수 릴리즈도 존재하지 않고 고객 맞춤형으로 판매만 하고 나면 끝인 제품인 것입니다.
제너 시스템즈가 기나긴 무상 유지보수 기간이 끝나고 유상 유지보수 서비스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가입자당 천원인 제품에 대한 유지 보수 비용은 많아야 년간 백원정도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렇게 받고도 망하지 않는 기업이 이상한 상황입니다.
많은 국내 제조사들은 심지어 삼성이나 LG와 같은 대기업조차도 유지보수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거나 이상하게 잡혀있습니다. A/S (After Service) 라는 신조어는 유지보수는 무상으로 지원해준다는 개념입니다.제가 존경하는 분 중에 현재는 외산 기업의 지사장님으로 계시는 분께서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서비스는 없고,'싸비스"만 있다"
6.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것이 먼저다
용산에 전자상가와 컴퓨터 상가가 몰려 있고, 같은 음식을 파는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것은 하나의 제품을 나 홀로 판매하는 것보다 여럿이 판매하는 것이 시장의 파이를 더 크게 키우고 이를 나누어먹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IT 시장에서는 '내가 못먹더라도 경쟁사가 배탈이 나게 만들겠다'는 생각을 가진 영업맨들이 꽤 있습니다. 경쟁사가 다 사라지게 만들어 시장을 독식하는 것보다 시장의 파이를 키워나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시스코와 폴리콤, 시스코와 주니퍼가 서로 경쟁하면서 최고의 제품을 지속적으로 시장에 출시하는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됩니다. 국내 IT 제조사들은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보다 더 싼 제품을 만들어 고만고만한 기능으로 출혈 경쟁을 할 때, 외산 벤더들은 뛰어난 기능과 성능으로 경쟁합니다. 프로젝트별로 이기고 질순 있지만, 전체적으로 함꼐 성장해야 합니다. 기술과 성능이 떨어지면 깨끗하게 물러나는 것도 필요합니다. 무조건 이기겠다는 전략은 시장을 망치고 함께 공멸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두서없이 6가지 정도로 많은 국내 IT 제조사들이 망하는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보다 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나름대로 큰 줄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공감하시는 부분도 있겠지만, 아닌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누가 제너시스템즈를 위기로 몰아 넣었나?
제너시스템즈는 총망받는 기업이였고, 국내 소프트스위치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였으며, 기술력이 집약된 회사로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현재 제너시스템즈는 기존 고객에 대한 유지보수에 주력하고 새로운 신제품 및 기존 제품에 대한 기능 개선 및 업그레이드가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누가 제너시스템즈를 위기로 몰아 넣었을까요?
제가 제너시스템즈를 잘 알지 못하지만 지금까지 일반적인 업계 상황을 살펴보았을 때 몇 가지를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우선 제너 시스템즈 자체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 유지보수에 대한 개념 부족으로 수익 저하
- 소프트스위치의 해외 시장으로 확장 실패
- 기존 소프트스위치 시장에 안주로 새로운 제품의 개발 실패
- 지난 10년 동안의 업그레이드 비용 산정 실패
- 기업용 IP PBX 제품의 출혈 경쟁
- 기존 SP위주의 영업에서 기업 영업을 위한 전략 수정 실패
제너 시스템즈와 경쟁하던 경쟁사들의 문제점도 살펴보겠습니다.
- 출혈경쟁으로 적정마진 이하의 매출을 제너가 확보하도록 유도
- 기술력으로 승부하지 않고 영업력과 자본으로 경쟁
제너 시스템즈를 도입한 고객들은 관행이라는 이유로 쉽게 저질러던 문제점도 있습니다.
- 매우 긴 무상 유지 보수 기간 요구
- 과도한 커스터마이징 요구
- 적정한 유지보수 비용을 책정하지 않고 원가 절감 요구
- 지속적으로 입찰을 유도하여 도입 단가를 하락시킴
제너시스템즈 자신과 경쟁사 그리고 제품도입 고객들 모두가 제너시스템즈를 위기로 몰아넣었으며, 이들이 벗어나지 못하는 관행과 국내 IT의 시스템적인 구조에 기인합니다. 제너시스템즈가 오라클이나 마이크로소프트만큼의 유지보수 비용을 받았어도, 다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제너시스템즈의 위기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갑으로 군림하면서 제너시스템즈를 힘들게 하면서 제품을 도입했던 많은 인터넷 전화 서비스 회사인 통신사들입니다. 이들은 제너가 더이상 새로운 서비스와 유지보수가 어렵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기존의 제품을 빠르게 다른 회사의 제품으로 다시 변경해야 합니다. 이 제품을 다루면 운영자와 구매 담당자들은 기존에 몇십억에서 몇백억의 투자비용을 원점으로 돌리고 다시 고객 서비스를 투자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도 그 더 많은 비용은 외산벤더로 돌아갈 확률이 큽니다. 이제 그들은 망하지 않을 회사가 가장 큰 도입 이유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IT로 먹고 살아가는 우리 안의 괴물
IT로 밥먹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구는 갑의 옷을 입고, 누구는 을의 옷을 입고, 누구는 병이나 정의 옷을 입고 살아갑니다. IT인들은 잦은 이직으로 갑도 되고, 을도 되고, 병도 되고, 정도 되곤합니다. 옷을 바꾸어 입을 때마다 그 시스템에 맞추어 움직인 결과입니다.
기업은 시스템에 의해 움직이게 되어 있지만, 이를 만들고 문화를 만드는 것은 사람입니다. 지금의 IT 생태계를 만든 것은 지금의 IT인들과 선배들입니다. 우리는 IT 시장의 급성장으로 따온 과실을 나누어먹기에만 급급하였습니다. 과도한 출혈경쟁을 자신의 영업력인양 떠들어 댔던 영업 사원님들, 시장의 방향과 기업의 요구사항을 반영하여 제품 비젼과 로드맵을 만들지 못했던 마케터님들, 만들어진 제품 비젼과 로드앱을 지키지 못했던 프로덕트 매니저님들, 무리한 커스터마이징 요구로 제품을 엉망으로 만들었던 IT 기획팀들, 외산 제품들이 왜 비싼지를 연구하고 고민하지 않고 영업만 강조하셔서 포기를 모르던 IT 사장님들.
이외에도 수많은 IT분들이 만들어낸 국내 특유의 IT 시스템과 그에 맞게 움직이게 하는 우리 안의 괴물을 조금씩 키워온 결과입니다.
마치며
이제는 국가 차원에서 다양한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유지보수 요율을 현실화하는 정책들이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제값주고 사는 것에 대한 정책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지 살펴볼 만한 가치가 있겠습니다.
이제 우리 안의 괴물이 더 이상 자라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도 자문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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