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 칼럼/엔지니어의 길을 묻다

[연재] SE의 길을 묻다 - 10. 조언의 가치

라인하트 2016. 4. 29. 11:31

 글 싣는 순서 
 1
SE의 길을 묻다

 2. 10년 경력의 UC SE
 3. 좋은 선배 엔지니어의 몇 가지 실수
 4. 엔지니어는 누구인가
                                                                               

 5. 좋은 후배 엔지니어 되기

 6. 전설의 엔지니어를 찾습니다
 7. 전문가로 성장하는 시간의 비밀  
 8.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의 전성기를 위하여
 9. 언제까지 엔지니어를 할 수 있을까  
 

10. 조언의 가치  

    


시작하며

"SE의 길을 묻다"라는 글을 쓴 이후로 10번째 글입니다. 열번째 글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 보다는 여느 글처럼 엔지니어 생활을 하면서 느끼던 것을 간단하게 정리합니다. 이 번 주제는 간단하지만 재미가 있어야 하므로 삼국지 이야기로 풀어봅니다. 



여몽, 오하아몽 (吳下阿蒙) 과 괄목상대 (刮目相待)의 주인공
나관중의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들은 자신의 능력이 거의 완성된 시점에 출사를 하므로 성장하는 캐릭터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오나라의 군권을 책임졌던 주유, 노숙, 여몽, 육손 같은 장수들 중에 성장형 캐릭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잘모르는 여몽이 바로 성장형 장수입니다.  
여몽은 삼국지의 최고의 장수 가운데 한 명인 관우를 사로잡고 적벽대전에서 유비에게 주었던 형주를 다시 되찾아서 오나라의 위세를 크게 일으켰습니다. 관우를 사로잡을 정도로 뛰어난 전략가인 여몽은 괄목상대라는 고사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여몽은 어린 시절 가난하여 글을 배우지 못해 병법을 알지 못하지만 무술은 뛰어난 장수였습니다. 오나라의 손권은 이를 안타깝게 여겨 학문에 힘쓸 것을 권유하여 용맹과 지혜를 겸비한 명장이 되도록 충고합니다. 손권의 충고에 탄복한 여몽은 책을 항상 가까이하게 됩니다.  그 후 주유의 뒤를 이어 오나라의 도독이 된 노숙이 여몽을 만나 대화하던 중 여몽의 식견에 감탄하여 이르길


"그 옛날 오 땅의 아몽(여몽의 아명)이 아니로세" (비복오하아몽 非復吳下阿蒙)

 

라고 하자, 여몽이 대답하길


"선비가 사흘을 떨어져 있다 다시 대할 때는 눈을 비비고 마주해야 합니다." (사별삼일 괄목상대, 士別三日 卽當刮目相待 )


여몽과 노숙은 어릴적 소꿉친구이기에 여몽의 자화자찬이 재미있게 받아 들여집니다. 




어릴적부터 일본 코에이 사의 삼국지 시리즈를 즐기다 보니 책도 여러번 읽고 장수들과 관련된 일화들도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위의 사진은 삼국지 게임시리즈 12 에서 손권의 충고이후 진중에서 항상 책을 읽었다는 여몽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몽의 괄목상대가 얼마나 성장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삼국지 게임상에 묘사된 여몽의 괄목상대 이벤트로 쉽게 알아보겠습니다. 이벤트 이전의 여몽은 통솔 81, 무력 81, 지력 49, 정치 48, 매력 82 정도의 능력을 가진 중급 수준의 장수로 나오지만, 괄목상대 이벤트 이후 여몽은 지력 89 와 정치 78 로 능력치가 급상승하면서 능력치 총합 기준 상위 6위의 장수가 됩니다.  


숫자의 의미를 명확히 하기위해 몇가지를 유명한 장수를 기준으로 정리해봅니다. 괄목상대 이벤트 이후의 여몽은 지력으로 제갈량이나 가후에 미치지 못하고, 무력으로 관우나 장비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삼국지 게임이 복잡해지면서 계략과 특수 기능에 중점을 두는 시스템으로 발전하면서 고른 능력을 갖춘 장수가 중요해졌습니다. 초기의 삼국지 시리즈는 특정능력이 뛰어난 장수가 많이 필요하지만, 요즘 삼국지 시리즈는 고르게 능력이 뛰어난 장수가 많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무력만 높은 장비나 위연 같은 장수는 순간 파괴력은 높지만 계략에 쉽게 빠져서 엉뚱한 짓을 합니다. 지력만 높은 장수는 계략이나 간계를 잘 사용하지만 직접 타격에는 취약합니다. 결국 여몽처럼 무력은 높으면서 적의 계략에 쉽게 빠지지 않는 장수가 좋은 장수입니다. 


괄목 상대 이벤트 이후의 여몽은 우리나라로 치면 강남스타일의 남자가 됩니다. 힘만 좋아 근육이 울퉁불퉁한 남자일 뿐만 아니라 뇌도 울퉁불퉁한 남자가 됩니다. 



손권, 여몽을 변화시킨 남자

손권은 조조, 유비와 함께 천하를 삼분했던 남자로 손견과 손책의 뒤를 이어 오나라를 안정시켰습니다. 삼국지가 위나라와 촉나라 중심이다 보니 오나라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떨어지지만, 오나라의 손권은 다방면에서 고른 능력을 보여주는 훌륭한 군주입니다. 


손권은 오나라를 물산이 풍부하여 백성이 살기좋은 나라로 만들었기에 수많은 인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중 여몽의 숨겨진 재능을 알아보고 용장을 넘어 지장이 될 것을 충고합니다. 마침내 성장한 여몽을 노숙의 뒤를 이은 대도독으로 앉히면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도록 하였습니다. 





여몽이 손권의 조언을 받아들인 이유는 무엇일까? 
여몽이 공을 세워 장군의 반열에 오르면서 배움이 짧아 여러 다른 장군들에게 비웃음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여몽을 걱정하는 노숙, 손권, 부하장수들, 그리고 글 좀 아는 병졸들도 알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점을 부하들은 충언을 했을 것이고 친구인 노숙은 술자리에 한 두 번은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노숙이 오나라의 대도둑을 그냥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하삼분지계"의 실질적인 입안자가 정사에서는 제갈공명이 아니라 노숙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입니다.


여몽은 자신의 무예와 공을 쌓아 바닥에서 장군의 반열에 오른 사람입니다. 친구 중에 제일 잘나가던 노숙이 말해도 듣지를 않고, 전쟁에서 생사와 동고동락을 같이 했던 부하 장수들의 속 깊은 충언도 듣지를 않았습니다. 여몽 같은 자수성가형은 고래로부터 남의 이야기를 잘 않듣습니다. 너무나 치명적인 문제를 가진 여몽을 바꿀 수 있었던 사람은 손권이였습니다.


왜 여몽은 다른 사람이 말했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손권의 충고에 책을 읽기 시작했을까? 고사를 살펴보면 손권이 여몽을 설득하는 장면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 미친놈아, 공부 좀 해! 대화가 않돼 너랑은" 라고 하질 않고, 용장과 지장의 차이를 설명하고, 용맹함과 지혜를 모두 갖추어야 명장이 될 수 있음을 설명합니다. 즉, 상대방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것입니다. 또 하나는 노숙이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친구이고, 손권은 오나를 지탱하는 손견의 아들이면서 뛰어난 손책이라는 형의 뒤를 이은 자로 오나라에서 사회적 지위나 권위로 보나 최고입니다. 


여몽의 부족한 학식은 오나라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지만, 실제 여몽을 바뀌게 할 수 있었던 사람은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역사는 괄목상대의 여몽과 충고한 손권 중에서 누구를 더 높게 기억할까요? 당연히 여몽입니다. 즉, 충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널려 있지만, 충고를 받아들여서 실행한 자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여몽을 찾을 수 있을까?  

살다보면 저절로 깨우치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유비, 관우, 가후 나 조조 같은 네임드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지만, 우리가 사는 현재 세상에서 네임드 캐릭터가 될 수는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중국 삼국지 시대의 전체 인구를 약 5천만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그중 정사와 야사를 모두 합쳐도 네임드 캐릭터가 500명 내외입니다. 여몽을 찾기 위해서 삼국지 네임드 캐릭터 중 최하급 장수 기준으로 네임드의 가치를 가늠해 보겠습니다. 


삼국지 게임을 기준으로 최하급 케릭터의 꼽아 보자면, 단연 양송과 유선입니다. 양송과 유선은 삼국지 11에서 통솔, 무력, 지력, 정치, 매력의 합이 80 (총합 500)을 넘지 못하는 장수로 쓸모가 전혀 없고, 데리고 있으면 반드시 사고를 칩니다. 쓸 데가 있다면 누군가를 놀릴 때나 씁니다. "에잇, 양송같은 놈" 정도에나...



유선은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능력이 거의 없지만, 유비라는 아버지의 후광으로 장수의 반열에 있는 자입니다. 반대로 양송은 적당히 타락했으며 뇌물을 좋아하는 자이면서 한중의 장로의 눈과 귀를 멀게하는 간신입니다. "악은 부지런하다"라는 것의 전형으로 뇌물을 받은 만큼 열심히 이간질과 간계를 꾸미는 기회주의자입니다. 가장 큰 업적은 마초와 장로가 서로 협력하지 못하게 하여 한중이 조조에게 떨어지도록 혁혁한 공(?)을 세웁니다. 


삼국지 게임 상에 무시받는 양송은 한중의 중심 캐틱터였으며, 삼국지 판세를 정확히 읽어 조조에게 붙으려고 무던히도 노력하였습니다. 양송조차도 판세를 읽는 능력과 뇌물을 받은 만큼 열심히 간계를 꾸미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름있는 장수들이 즐비한 세상이 아니라 십만이나 백만 대군의 어디즈음에 있습니다. 실력있는 분들이 백부장이나 천부장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양송도 만만한 상대가 아닌데, 우리 주위에서 여몽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따라서, 오하아몽과 괄목상대의 고사가 쉽게 일어나는 곳이 아니고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라는 말을 믿는 사람들로 넘치는 세상입니다. 몇 마디 이야기를 하다보면 바로 공감하는 문장이며, 사회 경험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강하게 믿는 문장입니다. 


아끼는 후배 엔지니어에게 하는 진심어린 조언들, 존경하는 선배의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는 조언들, 꼴보기싫은 엔지니어에게 종용하는 질책들. 술자리에서 회의 자리에서 담배피다가 커피한잔 마시다가도 듣거나 하게 됩니다. 가끔 친한 사이라면 그런 말들 사이에서 강한 반발이 일어나기도 하고, 그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받아들이는 척을 합니다. 말 몇마디로 바뀌는 여몽 같은 사람이 주위에 없을 확률이 백프로입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세상을 살면서 몇번씩 자신을 바꾸어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바뀐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무엇인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그 행동이 습관이 되도록 수년에서 부터 수십년에 이르기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필자가 처음 접하게 된 때는 사회 초년병 시절의 장기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입니다. 이 프로젝트에서 실력은 뛰어나지만 사람들과 회의나 업무 진행에 항상 마찰을 일으키는 분이 있었습니다. 팀원들이 팀장에게 항의를 하였지만, 팀장은 한마디로 정의했습니다. "나는 그의 부모가 아니다. 부모도 하지 못한 일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가?"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였던 팀원들은 그 분이 팀장이 충고하면 쉽게 태도를 바뀔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었고, 세상 경험이 많은 팀장은 몇 마디 충고나 윽박지름으로 그 사람의 태도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여기서 생긴 갈등을 한 쪽이 바뀌면 해결이 되겠지만, 바뀐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므로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제 기억에 다른 길은 "Let it be" 였던 것같습니다.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또는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라는 전제를 두고 생각해 보면, 대부분의 조언들은 목적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조언이나 충고는 가벼울 수록 좋고, 무거울 수록 무가치합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자주 잊어버립니다. 



마치며 - "삼인지행 필유아학생"은 아니지 말입니다.  
처음에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와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의 의미를 찾아가려 했지만, 점점 형이상학적인 내용으로 빠져서 형이하학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공자님의 표현을 빌어 정리합니다. 


"삼인지행 필유아사"는 맞아도 "삼인지행 필유아학생"은 아니지 말입니다. 나머지 두명이 반드시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내 학생도 아닙니다.  



 

생각해봅니다. "내 아들이 여몽만 되어도...."

자꾸 잊어 버립니다. 다시 생각합니다. "내가 먼저 손권이 되어야지.... "



여담 - 손권과 여몽의 마지막  

여몽과 손권은 끝까지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 했는 지 않했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여몽과 손권이 사이에 관우의 죽음이 등장하면서 다양한 이야기가 만들어졌습니다. 관우의 죽음 이후 유비의 촉은 조조의 위나라로 향하던 화살을 오나라로 향하게 됩니다. 관우 사후에 벌어질 일들은 누구나 쉽게 예측 가능한 상황이였으므로 손권은 죽이지 말라고 했으나 여몽이 독자적으로 죽었다는 설도 있고, 관우가 사로잡혔을 때 이미 치명상이 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또한, 여몽은 지병으로 관우가 죽은 후 얼마되지 않아 죽게되면서 저주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나라는 손견 때부터 뛰어난 장수들의 요절 징크스가 있는 나라입니다. 여몽도 요절하면서 징크스를 이어나갑니다. 죽기전까지 손권과 여몽의 관계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손권도 어디하나 빠지지 않는 인물이지만, 손책의 친구이자 대도독인 주유에게 가려져 있었습니다. 크게 성장한 여몽은 점점 주유처럼 성격이 되어가면서 손권의 식견이 약간 부족함을 자꾸 지적하게 됩니다. 손권에게 주유 징크스가 있기 때문에 여몽과 사이가 벌어졌을 것이고, 관우의 죽음을 기점으로 여몽을 독살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결국, 손권과 여몽은 끝까지 아름답지 못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참조자료
나무위키 : 삼국지 시리즈 여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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